05 출판사가 지켜야 할 원칙과 행동
지금까지 현재 출판시장에서 새로이 부는 전자책 열풍에 관한 문제를 검토해보았다. 그 내용을 네 가지로 다시 정리하고, 출판사가 지켜야 할 원칙과 전자책 사업 관련 실행 방법에 대해 대안을 대신하여 정리해본다.
1. 전자책에 대한 인식 전환을 통해 전자책의 출간 전략 수립과 마케팅을 중요한 업무로 인식해야 한다.
2. 전자책 제작은 출판사에서 직접 하는 것이 좋다. 유통업체에서 제작할 경우 파일 유출의 위험이 있다.
3. 전자책 시장에 대한 출판사와 유통업체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전자책 가격과 리더기 및 매장에 대한 출판사의 입장을 정해야 한다.
4. 전자책 시장의 오래된 화두인 정산과 결제 문제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 그 투명성을 바탕으로 국내에 원작을 제공하는 해외 출판사가 믿고 계약할 수 있는 DRM을 채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출간이 불가능했던 해외 출판물의 전자책 출간이 가능하다.
전자책 기획 및 판매 전략 첫째, 연간 300부 이하로 판매되는 종이책은 절판 후 전자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전자책은 신간보다 구간이 더 잘 팔릴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해마다 출간되는 신간의 종수는 5∼7만 종으로 이전에 비해 다양한 종이책이 출간되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의 출판으로 접어든 셈인데, 이렇게 되면 초판은 2,000부 안팎으로 찍어야 한다. 또 재판에 들어갈 확률도 낮아진다. 이럴 때 종이책 절판 후 전자책으로 전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독자는 온라인서점을 통해서 필요한 책을 전자책으로 구매하면 된다. 또 연간 300부 미만의 판매량 도서는 할인을 한다고 많이 나가지도 않고 신문 광고를 해서 판매를 확대하기도 어렵다. 이럴 경우 정가와 상관없이 독자들은 전자책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즉 종이책이라는 대체재를 없앤다면 전자책 판매는 롱테일 시장을 키우면서 늘어날 것이다. 전자책이 종이책의 대체재가 될 것이라는 확신만으로는 실제 시장을 만들 수 없다.
둘째, 전자책은 매체와 콘텐츠마다 출간 기획을 다르게 세워야 한다. 아이폰에서 판매할지 소니리더기에서 판매할지에 따라 전자책 제작이 달라진다. 또한 두꺼운 교재의 경우 차례에 따라 분권해서 판매할 수도 있다. 전자책을 단지 종이책의 부산물로 본다면 전자책 시장은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자책 전문 오퍼레이터 및 에디터 인력을 출판계 내부에서 키워야 한다.
셋째, 전자책을 종이책 온라인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 종이책 한 장을 떼어내어 전자책으로 만들어 무료로 올려놓는다면, 독자는 최소한 책의 1/10을 미리 보고 종이책을 살 수 있다. 앞으로 열리게 될 무료 전자책 코너에 모든 출판사가 미리보기나 요약 혹은 발췌 형태의 전자책을 제작하여 올려놓으면 종이책의 판매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열 권짜리 대하소설의 1권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무료 배포할 경우 종이책의 세트 판매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전자책을 활용한 다른 마케팅 방안도 앞으로 출판사가 고민해야 할 몫으로 남아 있다. 미국에서는 종이책의 테스트 마켓으로서 전자책이 먼저 출시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자책 제작과 DRM 첫째, 전자책 제작은 출판사가 직접 해야 한다. 전자책을 제작하기 위해 출판사가 원본 파일을 유통업체에 주는 것은 종이책의 필름을 서점에 주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따라서 현재 전자책 리더기나 PC에 맞도록 출판사가 전자책을 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전자책 파일의 소유권은 출판사에 귀속된다. 유통업체의 입장에서는 제작비가 절감되어 수익성이 높아지고 리스크는 줄어든다. 출판사는 파일 유출을 막을 수 있어서 일거양득이다.
둘째, 유통업체에 전자책을 제공할 때는 DRM을 씌워 제공해야 한다. 모든 전자책은 DRM을 씌운 채로 배본하고 판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제작과 유통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파일 불법복제나 유출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셋째, 국제적인 DRM을 사용한다. 국제적인 DRM을 사용하면 유통업체의 입장에서는 DRM 사용료를 줄일 수 있고 출판사는 이중체크를 통해 정산과 결제 과정을 신뢰할 수 있다. 해외 출판물도 들여올 수 있어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이에 따라 전자책 매출은 늘어 날 수밖에 없다.
전자책 출고 정가제 시행 전자책의 경우 정가와 매출, 판매가 등의 계산이 복잡하고, 정산하는 과정도 수익 배분에 의존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책을 판매할 때마다 수익이 달라진다면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저자에게 같은 책의 이번 판매분 인세와 다음 판매분 인세가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이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전자책 출고 정가제’이다. 전자책 출고 정가제는 비율로 나누는 수익 배분 방식이 아니라, 출판사가 고정으로 확보해야 할 매출을 정해놓고 그것을 출고가로 하여 유통업체와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출판사와 유통업체의 계약서에 정가도 수익 배분율도 적지 않는다. 대신 책 제목 옆에 출고가만 정해서 적는다. 예를 들어, 이번에 출간하는 전자책의 출고가를 4,000원으로 정했으면 유통은 공급가 4,000원에 자신의 마진을 붙여 정가나 판매가를 정한다. 그렇게 되면 유통업체에서 이벤트를 하거나 할인판매를 하더라도 출판사의 수익은 보존된다. 이것은 개인 판매뿐 아니라 아파트, 공공기관, 학교, 기업 등의 전자도서관 납품 같은 B2B 판매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독자를 먼저 생각하는 전자책 독자가 사용하는 전자책 리더기가 무엇이든 어떤 서점에서나 전자책을 살 수 있도록 전자책 매장에서는 전용기기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 출판사도 독자들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전자책의 디자인과 가독성에 신경을 써서 질 높은 전자책을 제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자책 제작비용이나 업무량 증가만을 고민하고 있으면 전자책 시장은 절대로 커질 수 없다. 출판사와 유통업체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면 저자와 독자는 합법적인 저작권을 향유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법적인 안정성과 함께 종이책의 기획과 제작 유통의 역할을 전자책에서 복원해낼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림4는 전자책 사업이 자리를 잡기 위한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현재의 전자책 유통과 제작 관행에 따르면 출판권과 저작권, 중개권, 판매권과 전자책 파일의 소유권까지 모두 유통이 가진다. 하지만 수백 년에 걸쳐 만들어진 종이책 거래 관행처럼 전자책의 유통과 제작도 각각의 역할에 맞는 자리 잡기가 필요하다. 저자는 원고를 쓰고 출판사는 책을 만들고 서점은 책을 팔면 될 뿐이다.
- 출처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기획회의 2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