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2. 22:41

02 전자책 제작의 문제점

  

우리나라의 경우 전자책 제작은 출판사가 아닌 유통업체에서 맡아왔다. 출판사가 종이책 전자 파일을 유통업체로 건네주면 유통업체에서 전자책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종이책으로 빗대자면 필름이나 원본 파일을 교보문고나 예스24, 인터파크 등의 서점으로 주고 서점에서 인쇄를 하여 판매하는 것과 다름없다.

 

 

전자책 파일의 소유권      유통업체에서 전자책 제작을 직접 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전자책에 대한 소유권 때문이다. 출판사나 저자로부터 콘텐츠 사용권 허락을 받는다면 특정 유통업체에서 제작한 전자책은 배타적 소유권을 가진다. 예를 들어 한 유통업체에서 전자책을 제작했다면 출판사가 전자책의 2차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전자책 파일을 요청할 수 없다. 전자책 파일을 출판사에서 소유할 경우 출판사가 다른 서점에 그 파일을 넘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제작을 한 업체 입장에서는 억울한 상황이 된다. 자신이 비용을 들여 제작한 전자책을 아무런 대가 없이 다른 서점에 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전자책 제작을 서점에서 할 경우, 전자책 파일 소유권은 서점이 갖게 되고 이 소유권은 서점 입장에서 전자책 사업의 가장 큰 기반이 된다.

 

  

전자책 사업의 진입장벽, 제작비 문제      전자책 제작비는 종이책으로 출간된 경우 권당 3만 원에서 30여만 원까지 들어간다. 쿼크 파일이나 인디자인 파일 및 한글 파일이 있는 경우라면 저가로 제작 가능하지만, 종이책을 갖고 제작할 경우 스캔을 받아서 텍스트를 추출하는(OCR)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제작비용이 비싸진다. 낱권 제작이라면 종이책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제작할 수 있으나 서점 입장에서는 3만 부만 제작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1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여된다는 문제가 있다. 전자책 제작비가 3억 원이면 1만 여권을, 제작비가 15억 원이면 5만 여권을 제작할 수 있다. 자본금이나 투자금의 금액에 따라 전자책 업체가 소유한 전자책의 종수가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전자책의 종수가 1,000종인 서점과 5만 종인 서점이 있다면, 독자들은 당연히 5만 종이 있는 서점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10억 원 이상 투자할 수 있는 전자책 서점만이 구색을 갖출 수 있고 시장에서 살아남을 가능성도 커진다. 제작해놓은 전자책이 많을수록 서점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군소 전자책 서점은 책 판매가 어려워진다.

 

종이책 시장도 대형 서점이 우세해지고 지방 중소형 서점의 영업이 어려워지거나 도산하는 상황인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종이책의 경우 거래조건만 맞는다면 국내 어느 서점에서도 팔 수 있으나, 전자책은 전자책 형태로 파일 제작이 되어 있는 곳에서만 판매가 가능하다. 전자책 제작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결국 자본력이 큰 서점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종이책 유통과 전자책 유통 비교      지난 10여 년간 출판계에서는 유통의 독과점화와 온라인서점으로의 독자 이동 등으로 도서정가제나 출판사 매출과 수익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출판계는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 벌어진 행태나 현실에 뒤쫓아 가는 모습을 보였다. 새롭게 재편되는 전자책 시장 역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다면 종이책 시장을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업무량에 일이 더 늘어나고 새로운 교육까지 받아야 한다는 문제로 출판사가 전자책 제작의 부담을 피한다면 출판계는 또 다시 유통의 하부구조로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1만 개가 넘던 지역의 작은 서점이 망한 원인이 서점의 무능력이나 유통의 독과점화에 있다고 하면 오히려 출판사 입장에서는 편할 수 있다. 하지만 편한 것에 안주한다면 결국 유통업체가 원고를 제외한 모든 것을 맡게 되고 권리 또한 갖게 될 것이다. 출판사에서 직접 제작하여 책임을 질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그 부담을 타인에게 부가하거나 전자책 서점과 유통사의 행태를 비판할 수는 없다.

또 지금처럼 동일한 책을 유통업체마다 다르게 제작하고 다른 형태로 판매한다면, 전체 유통업체의 개수만큼 제작비가 늘게 된다. A라는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만들 때 투여하는 비용이 5만 원이라 할 때, 현재의 제작 시스템에 따르면 10개의 유통업체에서 총 50만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다. 출판사에서 직접 제작하면 전체 제작비가 5만 원이면 되는데 약 10배인 50만 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출판사가 여러 이유를 들어 직접 제작하지 않을 경우 일부 유통업체의 독점화만 심화되고 전자책 시장은 커지지 않을 것이다. 제작비의 한계로 일부 대형 서점으로만 전자책 매장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온라인서점이나 쇼핑몰에서 출판사가 제작한 전자책을 판다면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도 있다. 온라인서점의 1일 방문자 수는 100만 여명으로 추정된다. 아직도 인터넷 이용 인구 중 대부분은 온라인서점에 방문하지 않는 것이다. 온라인서점과 온라인의 모든 매장에 전자책이 걸릴 수 있다면 200∼300만 명이 넘는 독자가 전자책을 볼 수 있게 된다. 대형 매장에서만 책을 살 수 있게 만들 건지 어디서든 살 수 있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출판사의 몫이다.

  

 

전자책 제작의 표준화 문제      종이책은 출판사가 기획하고 만든 형태 그대로 판매된다. 동일한 내용의 책이 교보문고에서는 무선 제본으로, 예스24에서는 양장, 유선 제본으로 판매되지는 않는다. 일부 만화나 이벤트용 책이 서점에 맞게 제작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동일 유형의 책을 출판사에서 만들고 독자에게 판매한다. 같은 책의 형식이 서점마다 다르다면 온라인서점에서 구매하는 고객은 특히 책의 상태에 불신을 하게 될 것이다.

 

한데 전자책은 유통업체에서 직접 제작하기 때문에 유통업체마다 형태가 다르다. 한 유통업체에서 제작한 e-북이 다른 유통업체의 뷰어에서 열린다면, 즉 콘텐츠의 호환성이 생기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콘텐츠의 독점을 위해 전자책의 형태를 규정할 수밖에 없고, 유통업체마다 레이아웃, 폰트, 디자인 등이 바뀌게 된다. 종이책을 예로 들면, 필름 출력과 인쇄 및 제본을 유통업체에 맡겨서 생기는 문제이다. 모두가 똑같은 전자책을 만든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제작 과정에서 원본 파일 유출 문제      서점 및 전자책 유통회사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전자책의 종수이다. 소유한 종수에 따라 해당 유통의 경쟁력이 좌우된다. 여기에서 제작비 문제가 발생한다. 제작비를 아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완벽하게 자동화된 전자책 툴이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전자책 제작 과정에는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따라서 중국의 조선족이나 아르바이트 등 값싼 노동력을 동원하여 제작을 하는 업체들도 있다.

 

한 전자책 업체에서 전자책 제작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공고를 냈다. 모집 내역 가운데 업무 내역을 보니출판된 책(PDF파일) 편집 및 전자출판(Epub) 100% 재택근무라고 되어 있었다. 출판사에서 제작한 원본 파일을 전자책 파일로 변환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그것도재택 아르바이트를 채용한다는 공고이다. 책의 원본 파일이나 PDF 파일을 주부나 대학생들이 받아서 작업을 한다는 것인데, 제작 과정에서 제작비 문제로 파일이 유출될 수 있다는 증거이다. 그 책을 만들기 위해 출판사에서 어떠한 노력과 비용을 투자했을지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책의 파일을 유통업체에서 마음대로 유출하고 있는 것이다. 불법 유통을 막아도 시원치 않을 상황에 보안을 책임져야 할 유통업체에서 먼저 파일을 유출한다면 전자책 제작은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 출처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기획회의 262호

Posted by 쭌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