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자책 시장에 관한 논의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전자책에 대한 우리 출판계의 인식은 처음 전자책에 대해 논의하던 때로부터 크게 나아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이번 호 특집은 출판사가 알아야 할 2차 전송권 계약의 원칙, 방법과 함께 현재 전자책의 기술 발전과 흐름을 짚어본다.
또 전자책과 전자책 시장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을 정리해본다.
2009년 한국 출판계에는 계약서가 떠돌았다. 계약서를 보낸 곳은 서점이다. 서점에서 출판사를 방문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출판사 창업 이래 서점에서 몇 번이나 방문을 했는지 세어본다면 대부분 열 손가락으로 충분할 것이다. 요즘은 서점에서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계약서를 설명하고 입고가를 높여준다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2,000∼3,000만 원대의 매절 제안을 받은 출판사들도 많다. 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출판사들은 때 아닌 호사를 누리고 있다. 낮은 입고가와 광고비용, 이벤트 비용에 시달리던 출판사가 서점이나 유통업체로부터 진정한 ‘갑’의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한데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이 계약서의 대상은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e-book)이다.
이 유령 같은 계약서들의 제목은 대부분 ‘전자책 전송권 및 2차 저작물 사용 계약서’이다. 출판인이라면 이 계약서를 대했을 때 걱정과 짜증이 동시에 생길지도 모른다. 잊고 싶은 기억, 북토피아 사태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북토피아 사태는 우리 출판계에 전자책과 2차 저작물에 대한 피해의식을 조성했다. ‘2차 저작물 사용 계약서를 체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쯤 불었던 IT 산업 투자 열풍으로부터 출판계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그 결과 출판사들이 직접 투자한 전자책 회사(북토피아)가 설립되었다. 정부 투자와 함께 공공 및 학교도서관의 전자책 구매 예산 책정은 전자책 사업의 활성화를 불러왔다. B2C 유통을 활용한 전자책 판매가 활성화되지 않았어도 곧 누구나 종이책이 아닌 PC나 전자책 리더기를 활용하여 책을 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시장이 성장하지도 않았고 컴퓨터나 다른 디바이스로 책을 보는 사람도 크게 늘지 않았다. 여전히 주류는 종이책이며 도서시장 전체에서 전자책 시장 점유율은 3%를 넘지 못한다. 게다가 한국에서 가장 큰 전자책 제작 및 유통회사인 북토피아의 질곡은 한계를 노출한 시장 규모만큼이나 한국 전자책 산업의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시기에 출판사에 돌려진 ‘2차 저작권 사용 계약서’는 어떤 의미일까. 왜 서점과 유통업체는 전송권 계약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출판사들은 전자책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떨고 있는데 왜 대형 서점은 전자책 시장에 강한 확신을 보이는 것일까. 현재 유통업체와 서점들이 진행하려 하는 전자책 사업은 실패한 북토피아 전자책 모델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이제 이 문제에 대해 시장 규모나 성장 가능성과 무관하게 대답을 찾아야 하는 때가 되었다.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준비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계기는 유통업체와 서점이라는 출판사 외부에서 주어졌지만, 출판사의 내부 동인動因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제2, 제3의 북토피아 라는 비운의 시리즈 영화 제작자가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과연 전자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전자책 제작의 문제점은 무엇인지와 지금 전자책 시장의 현실 등을 살펴보려 한다.
이동준 (주)한국출판콘텐츠 사업부 팀장 timidbear@empal.com